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으세요.

여기서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구나.

이상한 건 제가 외톨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연락하는 사람도 있고 만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도 이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닙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그래서 한번 세어봤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적지 않았습니다. 회사 동료, 대학 친구, 고향 친구, 가족. 다 저를 압니다.

그런데 각자가 저의 다른 조각만 알고 있었어요.

  • 회사 사람은 일하는 나만 압니다
  • 대학 친구는 스물몇 살의 나만 압니다
  • 고향 친구는 열몇 살의 나만 압니다
  • 가족은 집에서의 나만 압니다

각자 아는 건 다 맞는 얘기입니다. 틀린 게 아니에요. 다만 전부가 아닙니다.

관계는 시작한 시점에 고정됩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관계는 대개 만난 시점의 나를 기준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그 관계의 기본값이 돼요. 그리고 그 뒤로 바뀐 건 잘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관계일수록 옛날의 나를 알고 있습니다. 십 년 된 친구는 십 년 전 기준으로 저를 대해요. 그 사이에 제가 뭘 겪었는지는 대개 모릅니다.

이건 그 사람이 무심해서가 아닙니다. 관계는 갱신하려면 따로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관계에는 그럴 자리가 없거든요.

그런데 나조차 합쳐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여기가 핵심입니다. 각 자리에서 다른 얼굴로 지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전체 그림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사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 집에서의 나, 혼자일 때의 나. 이게 한 번도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어요. 각각은 다 있는데 합쳐진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도 나를 모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통째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었어요.

나를 포함해서요.

두 가지 소원이 섞여 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사실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이해받고 싶다는 것. 이건 사람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시간을 들이면요.

다른 하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것. 그런데 이건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어요.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도 결국 자기가 본 조각만 알거든요.

이 둘을 섞어두면 계속 헛헛합니다. 사람을 만나도 안 채워지는 부분이 남으니까요. 애초에 사람이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 한 사람이 전부를 알아주길 기대하지 마세요. 조각별로 맞는 사람이 다릅니다. 일 얘기가 통하는 사람, 힘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냥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다 다를 수 있어요. 그게 관계가 얕은 게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생긴 겁니다.

한 사람이 전부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모든 관계가 부족해 보입니다. 나눠서 보면 각각은 꽤 충분해요.

둘. 합치는 건 내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기록의 역할입니다. 회사의 나, 집에서의 나, 혼자일 때의 나가 한 곳에 나란히 적히는 유일한 장소가 기록이거든요. 사람은 자기가 본 조각만 볼 수 있는데, 기록은 전부를 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은 말할 데가 없어서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흩어져 있는 나를 한 군데 모으려고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 아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각자가 다른 조각만 알고 있는 것이다
  • 관계는 만난 시점의 나에 고정된다. 오래될수록 옛날의 나를 안다
  • 그래서 전체 그림이 어디에도 없다. 나를 통째로 본 사람이 없다
  • 나 자신도 합쳐본 적이 없다는 게 진짜 지점이다
  • "나를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엔 이해받고 싶다 +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가 섞여 있다
  • 한 사람이 전부를 알아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조각별로 맞는 사람이 다르다
  • 합치는 건 내 몫이고, 기록이 그 자리다

다만, 이걸로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 잠이 계속 안 오거나 반대로 계속 자게 되거나
  • 먹는 게 어렵거나
  • 씻고 청소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이 안 되거나
  •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이런 상태라면 기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그때는 전문가를 만나는 게 맞습니다. 기록은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지, 치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감각이 몇 달째 이어지면서 사람을 아예 안 만나게 됐다면, 그것도 도움을 받으실 신호입니다. 혼자 정리해서 될 크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심리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말할 데가 없어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 저는 이름 없는 숲이라는 익명 기록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댓글도 평가도 없이, 그냥 적어두기만 하는 곳입니다.
흩어진 나를 한 군데 모아두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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