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날 것 같을 때, 우는 것보다 먼저 하는 게 있으세요.
저는 검사를 합니다. 이 정도 일로 울 일인가. 이 나이에 울어도 되나. 남들도 다 겪는 건데.
그러다 보면 대개 안 울게 됩니다. 그런데 안 운 게 아니라 미룬 것이더라고요.
우리는 울음에 자격 심사를 붙입니다
어릴 때는 울음이 그냥 나왔습니다. 넘어지면 울고, 억울하면 울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울기 전에 심사가 붙습니다.
- 이 정도 일로 우는 건 오버 아닌가
- 이 나이에 울면 좀 그렇지 않나
- 나보다 힘든 사람도 많은데
울음은 원래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배고프면 배가 고픈 것처럼, 그냥 몸이 하는 반응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심사대를 하나 세워둡니다.
울음의 크기를 사건의 크기로 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왜 심사가 붙느냐면, 우리가 울음의 크기를 사건의 크기로 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큰일에는 울어도 되고 작은 일에는 울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사소한 일에 눈물이 나면 스스로가 이상해 보입니다.
- 길에서 넘어졌는데 눈물이 났다
- 편의점에서 카드가 안 됐는데 울컥했다
- 드라마 한 장면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요즘 왜 이러지. 좀 예민해졌나.
그런데 울음은 누적에 대한 반응입니다
여기가 핵심인데요. 울음은 그 사건 하나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그동안 쌓인 것에 대한 반응이에요.
컵에 물을 계속 붓다 보면 마지막 한 방울에 넘칩니다. 그런데 넘친 이유는 그 한 방울이 아니죠. 앞의 물이 이미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소한 일에 눈물이 났다는 건 그 일이 슬퍼서가 아니라 이미 차 있었다는 신호입니다. 크기가 안 맞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 일 하나를 재는 게 아니었어요.
이걸 알면 "이 정도 일로 우는 내가 이상하다"는 심사가 성립을 안 합니다. 재는 대상 자체가 틀렸으니까요.
진짜 무서운 건 울음이 아니라 그 다음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참는 건 우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가 아니에요.
울고 난 다음이 무서운 겁니다.
- 한 번 터지면 안 멈출 것 같아서
- 눈이 부어서 수습이 안 될까 봐
- 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 왜 우냐고 물으면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특히 출근을 해야 하거나 누굴 만나야 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는 게 아니라 미루게 되는데, 문제는 미룬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컵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끝나는 지점을 먼저 정해두세요
그러니 제가 권하고 싶은 건 실컷 울라는 말이 아닙니다. 끝나는 지점을 먼저 정해두는 것이에요.
울음이 무서운 건 끝이 안 보여서거든요. 그런데 다음에 뭘 할지 정해져 있으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울고 나면 세수하고 물 한 잔 마시기
- 울고 나면 10분 걷기
- 울고 나면 이불 정리하고 자기
시시해 보이지만 이게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돌아올 길이 있으면 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울고 나서 "왜 울었지"를 묻지 마세요. 그렇게 물으면 사건 하나를 지목하게 되고, 그게 사소하면 다시 자기가 이상해 보입니다. 대신 이렇게 물으시면 됩니다. "요즘 뭐가 쌓였지." 그게 맞는 질문입니다.
정리하면
- 우리는 울음에 자격 심사를 붙인다. 이 정도 일로, 이 나이에
- 심사가 붙는 이유는 울음의 크기를 사건의 크기로 재기 때문이다
- 그런데 울음은 그 일 하나가 아니라 누적에 대한 반응이다. 마지막 한 방울일 뿐이다
- 참는 건 울음이 아니라 그 다음이 무서워서다. 그래서 미루게 된다
- 끝나는 지점을 먼저 정해두면 시작할 수 있다
- 울고 나서는 "왜 울었지"가 아니라 "뭐가 쌓였지"를 묻는다
다만, 이걸로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 잠이 계속 안 오거나 반대로 계속 자게 되거나
- 먹는 게 어렵거나
- 씻고 청소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이 안 되거나
-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이런 상태라면 기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그때는 전문가를 만나는 게 맞습니다. 기록은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지, 치료가 아닙니다.
그리고 눈물이 하루에도 여러 번, 몇 주째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도 도움을 받으실 신호입니다.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혼자 감당할 크기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저는 심리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말할 데가 없어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 저는 이름 없는 숲이라는 익명 기록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댓글도 평가도 없이, 그냥 적어두기만 하는 곳입니다.
울어도 되냐고 묻지 않는 곳입니다.
https://nameless-forest.com/ko?utm_source=naver&utm_campaign=allowed-to-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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