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순간, 있으세요.
회의에서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만 무슨 얘긴지 모를 때. 새로 온 곳에서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다들 알아서 하고 있을 때. 뭘 물어보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을 때요.
저는 그럴 때마다 제가 눈치가 없거나 부족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게 있어요.
다들 아는 게 아니라, 각자 조용히 알아낸 겁니다
어느 조직에나 아무도 말로 설명해주지 않는 규칙이 있습니다. 언제 보고를 하고, 어디까지가 내 일이고, 이 사람한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요.
이건 문서에 없습니다. 그래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요. 다들 각자 눈치로, 실수하면서, 몇 번 부딪히면서 알아낸 겁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다 같이 배운 게 아니라, 각자 조용히 알아낸 것입니다. 지금 헤매고 있는 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다들 한 번씩 지나간 자리예요. 다만 그 과정은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안 보일 뿐입니다.
물어볼 수 있는 창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모르는 게 생겼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 창이 생각보다 짧아요.
처음 며칠은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물어보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 이제 와서 물어보기 뭐한 것이 됩니다.
그때부터는 모르는 걸 아는 척으로 덮게 됩니다. 그리고 덮을수록 더 못 묻게 되죠. 나중엔 그걸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비밀이 됩니다.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른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친 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모른다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른다고 하면 능력이 의심받을 것 같아서입니다.
특히 새로 온 곳일수록 그래요. 아직 나를 증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른다는 말을 꺼내면, 그게 나에 대한 평가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초반에 많이 묻는 사람이 훨씬 빨리 자리를 잡습니다. 오히려 묻지 않고 혼자 헤매다가 나중에 크게 어긋나는 쪽이 더 눈에 띄고요. 모르는 걸 숨기는 비용이 묻는 비용보다 훨씬 비쌉니다.
모르는 걸 목록으로 모아두세요
그래도 그때그때 묻는 게 어렵다는 걸 압니다. 분위기도 있고, 타이밍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권하는 건 이겁니다.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물어보지 말고, 일단 적어만 두세요.
- 아까 회의에서 나온 그 용어
- 이 문서는 누가 최종 확인하는지
- 이 일정은 왜 이렇게 잡혔는지
적어두면 두 가지가 좋습니다. 하나는 잊어버리지 않는 것. 다른 하나는 모르는 게 몇 개인지 눈에 보인다는 겁니다. 머릿속에 있을 땐 전부 모르는 것 같은데, 적어보면 대개 서너 개예요.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리고 물어볼 만한 사람이나 자리가 생겼을 때 그 목록을 한 번에 꺼내면 됩니다. 한 번 묻는 걸로 여러 개가 해결돼요.
묻는 방식을 바꾸면 훨씬 쉬워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같은 질문이라도 묻는 방식에 따라 난이도가 다릅니다.
"이거 원래 어떻게 하는 거예요?"는 꺼내기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말이라서요.
대신 이렇게 물어보세요. "제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 방향 맞을까요?"
같은 걸 묻는데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의 것은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고, 뒤의 것은 이미 해보고 확인하는 말이거든요. 틀렸으면 고쳐주고, 맞으면 확인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손해가 없어요.
정리하면
- 다들 아는 게 아니라, 각자 조용히 알아낸 것이다. 과정은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안 보일 뿐이다
- 물어볼 수 있는 창은 짧다. 지나면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말할 타이밍이 문제가 된다
- 모르는 걸 숨기는 비용이 묻는 비용보다 비싸다
- 그때그때 못 묻겠으면 일단 적어만 둔다. 적어보면 대개 서너 개다
- "이거 어떻게 해요"보다 "이렇게 하고 있는데 맞나요"가 훨씬 묻기 쉽다
다만, 이걸로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 잠이 계속 안 오거나 반대로 계속 자게 되거나
- 먹는 게 어렵거나
- 씻고 청소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일이 안 되거나
-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이런 상태라면 기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그때는 전문가를 만나는 게 맞습니다. 기록은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지, 치료가 아닙니다.
저는 심리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말할 데가 없어본 적 있는 사람입니다.
🌲 저는 이름 없는 숲이라는 익명 기록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댓글도 평가도 없이, 그냥 적어두기만 하는 곳입니다.
모른다고 적어도 아무도 안 보는 곳입니다.
https://nameless-forest.com/ko?utm_source=naver&utm_campaign=everyone-bu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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